파멸의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괜찮을 겁니다.

세계화와 평화의 시대는 저물고, 세계의 어느 영국의 “1984년”과 “멋진 신세계”를 추종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거미줄을 통해 인간성과 집중력을 팔아 돈을 얻고 있으며, 세계는 혼돈의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인류의 역사는 투쟁이자 전쟁의 역사, 1910년부터 1945년에도,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0년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기억해봅니다. 결국 사회는 현실에 충실하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굴러갔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희망해봅니다. 파멸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겁니다.

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이것은 어쩌면 1970년대와 1980년의 회귀를 뜻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건 어느 2077년의 프리퀄이자 과거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인간에겐 신체화된 인터넷 접속 가능한 기계가 하나씩 있습니다. 정부는 아나키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오픈소스 시스템을 체리피킹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느 대륙 국가처럼 최선을 다해 검열할지도 모릅니다. 우린 해킹으로 신념을 표현하는 핵토비즘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며 투쟁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일 압수수색이나 체포를 당할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겁니다.

단순히 괜찮다 라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 되기에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건 자기 암시에 불과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객체의 지능이 높기 때문에 모든 생태계의 포식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느 순간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집단을 이루고 확장하는 것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인간이 다른 포식자들에 비해 뛰어난 점은 지구력입니다. 인간은 지금처럼 무기가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는 지속적이고, 집단적으로 사냥감을 쫓아다니며, 마침내 지친 사냥감을 잡았습니다.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집단을 이루고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며 지속적으로 목표를 추종하는 것이 본성이자 인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괜찮을 겁니다.

평화의 시대를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 넉넉히 잡아본다면 30년 정도가 나옵니다. 자연상태의 인간 수명이자, 현대 사회 인간 수명의 33% ~ 0.5% 정도의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인류 전체 역사에선 짧은 황금기입니다. 어쩌면 벨에포크 시대처럼 소위 잘나가는 집단들의 멋스러운 추억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지난 30년간과는 무척이나 다른 분위기와 시대정신이 함께할 것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절망하지 않길, 너무 낙담하지 않길 스스로에게 바라며, 이 기묘한 글을 써봅니다. 자신의 글은 자신이 제일 잘 기억하는 법이니까요. 어려운 주제로 글을 풀어봅니다.

누군가는 낙담할 수도, 누군가는 분노할 수도, 누군가는 그렇기에 길거리로 나갈 수도, 누군가는 조용히 새 시대를 기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것까지 가치판단을 하거나, 가이드라인, 해법을 제시하는 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언제 어느 자리에 있든 안녕하길 바라는 조그만 응원을 보내봅니다.

느슨한 연대와 환대에 감사하며

파멸의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추신 이런 글에 추신을 다는 것을 별로 선호하진 않지만 달아봅니다. 저는 사회 쟁점 같은 이야기를 하기에 통찰 같은 것들이 부족하며, 이런 부분에 대한 충돌로 연의 수명이 다하는 것을 되게 불안해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글이라는 게 전반적으로 통찰을 주거나 지식 전달 보다는 내 생각을 발산하여 누군가 읽고 흥미로워하거나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는 목적이 주 이기 때문에 써보았습니다. 어쨌거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은 계절성 우울의 계절, 모두 안온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나현 / 재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