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에 사회 과목에서 정치에 대해 배우기로 정치는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행위 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삶에서 정치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폭넓게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제가 여러모로 부족하기에 정치 현안 혹은 정치인, 정치권에 대해 좁은 의미로서 이야기 드리는 점 양해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하기 어려운데 의견 충돌이 나기 좋은 주제이자, 그 사람에 대한 핵심 가치관을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의견이 다르더라니 비교적 너그럽게 양해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정치 성향이라는게 워낙 복잡하여 일단은 자기보고식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크게 유의미하진 않을지라도, 어쩌면 제 생각을 단편적으로 참고하기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https://politiscales-kr.github.io/results/?YjA9NzkmdDA9NTImdDE9MjkmczE9MTImczA9NjkmajA9ODYmajE9NSZwMD00NSZwMT0zMSZlMD01NSZlMT0xNCZmZW1pPTY3Jm0wPTY5Jm0xPTE0JmMwPTc5JmMxPTEwJnByYWc9Njc= ) 해당 검사에 따르면 구성주의(사람은 환경 안에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교정주의(범죄자를 엄벌하는게 아니라 교정한다.), 진보주의(전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국제주의(국가 간의 위계질서를 철폐하고, 국가간의 협력을 중요시 여김), 공산주의(생산 수단의 사회화), 규제주의(시장의 간섭하고 규제), 상태주의(인간의 활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급진주의(법의 한계를 넘나들며, 직접 행동)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으며, 정의-평등-인류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디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직접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었으며, 원래는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야당 대표의 체포 동의안 가결로 인해 무언가 내 안에서 끊어진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교원, 외교관은 불체포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지위에 따라 가진 불체포특권의 범위가 다르긴 하지만 말입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에서 국회를 압박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 44조와 계엄법 13조에 정의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에서 입법부를 해산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생겼으며, 그래서 군사 정권 때는 계엄을 통한 국회 해산등 을 통해 이를 우회했다고 알고 있으며, 국회의원 헌정 사상 동의안이 가결된 것은 16번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드문 일입니다. 무척 황당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에게 사람들이 많이 실망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국가의 운영이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국가를 신뢰하기 힘들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다 라고 각인 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국민 우선 주의가 성행하고, 세계적으로 우경화가 유행인 시대에 발 맞춰 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대체로 좌파가 민족주의를 펼치는 것과 별개로 말입니다.(웃음)

저는 20대 중반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자본과 공권력을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권력은 공무원을 통해 행해지는 권력으로 검찰, 경찰, 소방, 군대, 행정 등을 이야기합니다. 전반적으로 공권력은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하는 권력인 만큼 굉장히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중 경찰과 군대 같은 폭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권력은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역 문제와 일을 하며 노동에 관한 의제들을 접하면서 특히 경찰과 군대에 대해 정말 제대로 권력을 이행하는 것이 맞는지, 견제는 제대로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신뢰도가 추락한 계기는 아무래도, 2022년 여름 쯤에 있었던 조선소 노조 시위 해산을 위해 고공농성 중이던 노조 간부를 경찰봉으로 강제 진압한 일일 것입니다. 군대에 대한 신뢰도는 근본적으로 징병과 군대가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군대 내에서의 많은 사건들의 은폐로 차차 떨어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잘못했으니까 수사 받겠지, 아직은 북한과 전쟁 중이라고 하니까 징병을 하고, 군인을 많이 필요로 해서 그렇겠지 란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은 근데 그게 정말로 필요한 일이고, 명분인지, 단순히 그런 명분들을 내세워 합법적인 폭력을 저지르는게 아닐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신뢰도가 많이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에 대한 신뢰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좋은 대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고 배우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니, 연 1조 5천억을 버는 회사가 협력사 직원들은 왜 퇴근을 안 시키는지, 왜 노조가 생기고 나서야 구내 식당 메뉴와 협력사 복지가 좋아졌는지, 정말로 돈을 못 버는 것이 개인의 문제인지, 대출에 허덕이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인지, 금융권의 무분별한 투자와 유동성과 인플레이션 정책에 개인이 이용된 건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저에게 빨갱이, 좌파라는 타이틀을 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의제에 따라 의견은 조금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확실히 좌파나 진보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2017년부터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엔지니어는 공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공학은 자본집약적이죠. 공학은 결국 효율적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이것을 팔아 실질적으로 재화를 얻는 것은 기업과 마케팅 등의 일이지만, 효율적으로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더 적은 자본, 자원, 시간, 통틀어서 저는 칩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을 들여 만드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반도체학과가 뜨는 것도, 전산학과가 뜨는 것도, (원칙적으로 전산학과 컴퓨터 과학은 자연과학 계열이며 컴퓨터 공학은 흔히 이야기하는 반도체, 전자공학과 결이 같으나 한국에선 컴퓨터 공학과 전산학의 결을 같이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공학도들이 취업이 잘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투자와 자본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들의 공통된 속성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보수 하고, 개선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시스템인데, 현대 사회는 공학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생산수단이 된 만큼 칩의 효율성을 제외하고 생각하기 어려우며, 시스템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 또한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로 공학은 문명의 이기의 선봉장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별적 복지도 보수의 산물이다 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근본적으로 복지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만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이 문제다 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공권력의 존재 의의와 국가의 존재 의의가 뭔지 모르겠다! 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러니까 국가와 기업은 어떤 형태로든 국민을 착취하는 형태로 돌아간다 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엔지니어는 직업적으로 진보적이기 어려운 사람이겠지요. 우리가 흔히 군대나 정보기관, 경찰 등에게 진보적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웃음)

실제로 여전히 국가가 정말 필요 없을 수 있을까? 공권력이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가능할까? 같은 고민이나 의제에 있어서 잘은 모르겠다라고 답하거나, 그러긴 힘들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쪽이니까요.

어쩌면 사이버펑크 2077에 나오는 노마드와 같은 삶이라면, 그런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삶이 썩 유쾌하거나 평온할 거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정말 제대로 굴러갈까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환경이 온다면, 잘 살겠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이런 수많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힘이 닿는 곳까지는 인문학 같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런 걸 안다고 제가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길잡이는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체력도 길러야겠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느낀 것 중 하나는 배움에는 체력이 제법 많이 필요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체력이 좋은 10대 20대 초중반에 많은 양의 지식을 배우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컴퓨터과학은 비교적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그러니까 컴퓨터 과학 전공자 중에 사회주의적 이고 아나키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컴퓨터 과학은 이공계, 공학계열 중엔 생산 수단을 취득하기 쉬운 학문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말해 성능 좋은 컴퓨터 세트 하나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전통적 공학처럼 몇 천, 몇 억짜리 장비가 필요하지 않는 분야이기도 때문입니다. 컴퓨터 과학과 오픈소스는 필요불가결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오픈소스화가 되어 있고, 네트워크 또한 정보의 공유라는 목적을 위해 발전한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이 어떠하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많은 사람들이 기여하고, 그것으로부터 명예를 얻거나 실력을 입증하려고 하는 이유는 생산수단이 성능 좋은 컴퓨터와 자신의 논리, 지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공계 학문에 비해 학문의 나이가 젊고, 기존 세대들이 오픈 소스로 만들고, 소스를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서 빠르게 발전을 도모한 것도 한 몫 했지만, 그런 것들을 내 컴퓨터에서도 쉽게 실행하고 테스트하고 문제를 고칠 수 있는 것도 크게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로써 가지는 태도나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컴퓨터에 대한 전공은 과학과 공학 그 이상의 무언가를 넘나드는 전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법 긴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이고, 많이 쓰지 않는 주제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한번 정리해보자는 생각도 들어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글의 초입에서 그러하듯,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어쨌든 어려운 시대에 생존과 일상 영위를 위해 힘쓰는 내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느슨한 연대와 환대에 감사합니다.

파멸의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유감이지만, 괜찮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