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쉬는 날엔 산책하러라도 나가야지, 동네 하천이라도 봐야겠다 하고는 정신 차려보면 카페에 도착해 있다. 지하철을 타고 30분은 가야 하지만, 그런데도 그곳의 커피는 살면서 먹어본 것 중의 제일 맛있다. 쓰거나 신 커피가 아닌 고소한 커피, 확실히 요즘은 어딜 가도 커피가 시다. 사장님은 매일 아침 출근해서 그날의 기온에 맞게 커피 머신을 셋팅한다. 섬세함과 미학이 깃든 커피는 안식을 찾기에 충분한 법이다.

나는 밥보다는 마시는 것들을 좀 더 까다롭게 본다. 밥은 적당한 걸 먹어도 되지만, 마시는 것들은 꼭 가던 곳을 가거나 신중하게 고른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일하는 중에 먹는 커피인데 그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다. 훌륭하게 잘 만들어진 각성제이다. 차갑고, 빠르게 마실 수 있으며, 카페인도 채워준다. 따뜻한 기호품이 추는 미학은 급하게 마실 수 없음에 있다. 아주 정중하게, 정장을 입는 것까진 아니지만, 최소한의 여유와 정중함을 강제로 공급한다. 커피, 차, 위스키처럼 내가 좋아하는 액체들은 나에게 여유와 정중함을 강제로 주입한다. 커피는 따뜻한 플랫화이트, 차는 기문홍차와 정산소종, 위스키는 아드벡과 라프로익 모두 급하게 마셔서는 즐기기 어렵다. 풍미와 여유는 비례한다. 마음이 무겁다면, 풍미마저 무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위스키에 대해서는 의문을 느낄 수도 있겠다. 위스키는 따뜻하게 먹지 않으니까, 하지만 얼음과 쉐이킹이 난무하는 음주의 세계에서 위스키는 적당히 따뜻하다. 온도든 감각으로든 실제로 높은 도수의 술들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나는 글랜캐런이라고 흔히 부르는 튤립잔에 온전히 위스키만 담아 마시니 훨씬 따뜻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부드럽게 마셔지면서 연기 맛이 난다는 점이다. 플랫화이트는 라떼처럼 우유를 넣는데 라떼보다 우유를 적게 넣음으로써 좀 더 에스프레소 본연의 맛을 살린다. 게다가 그 에스프레소가 고소한 맛이라면, 훈연한 맛으로 느껴진다. 정산소종은 통상적으로 훈연을 하므로 훈연한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원래는 얼그레이를 즐겨 마셨는데 얼그레이는 정산소종의 영국산 카피품이다. 얼그레이와 정산소종의 결정적인 차이는 얼그레이가 좀 더 진하고 향이 인공적으로 강하다고 느끼게 한다. 인공적인 향이 때때로 역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정산소종을 좀 더 선호하게 되었다. 기문은 정산소종이 자주 가는 찻집에 들어오지 않아 추천받아 마셔본 적이 있다. 정산소종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훈연맛이 좋고, 더 부드럽게 넘어가기에 좋아하는 차가 되었다. 아드벡은 강렬하게 바 전체에 퍼지는 향을 가지고 있으며, 바다-내음 사이로는 훈연향이, 그리고 찬찬히 느껴지는 단맛과 알콜 펀치는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 라프로익은 아드벡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다른데 아드벡은 SUV처럼 밑에서부터 힘 좋게 끌어올리는 느낌이라면, 라프로익은 스포츠카처럼 강렬하게 터지는 느낌이다. 위스키에 대해 조금 알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탈리스커는 넣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라프로익은 전반적인 느낌으로 보았을 때 훈연향과 단맛 위에 바다-내음이 올라간 느낌이고, 탈리스커는 바다-내음 위에 훈연향과 단맛을 얹은 느낌이다. 둘은 감각적으로 다른 느낌인데 좀 더 라프로익이 부드럽기에 탈리스커보다는 라프로익을 선호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훈연은 되게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이 담배와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도 훈제된 음식들을 좋아했던 거 보면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취향에서 이유를 찾는 건 중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담배와 술 모두 점차 줄여가고 있고 부담스러워져 가기 때문에 새로운 취향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마심에 있어서 맛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사람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려고 마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사장님과, 때로는 스스로와 대화하기 위해 말이다. 어쩌면 이것들은 공통된 공간에서 공통으로 하는 행위를 통해 평온함을 얻거나 작당 모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마술일지도 모른다. 차나 커피 같은 것들은 자연의 산물이라고 보기 보다는 인간의 생산물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기호품들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상당한 인간의 가공이 들어가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기호품들을 같이 소비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가벼운 사회 활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듯한 취향이 없어도, 같이 소비하고, 서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기호품이란 결국 그런 종류의 물건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