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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망한 사랑 이야기. 이 작품을 꽤 많은 친구들이 보았고, 꽤 많이 좋아했고, 꽤 많이 추천했는데 이제서야 보게 된다.

이 작품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에 대해 망한 사랑 이야기보다 적절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왜 맘에 들었는가 대한 대답은 공허함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카우보이는 무엇인가, 카우보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와 낭만을 사랑하는 미국적인 시골 청년을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카우보이는 서부개척시대에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이었기에 말을 타고 소를 몰았고, 강도에게 대항하기 위해 권총을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자유와 낭만이 좋아도 집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당시 3D 직업 중에 하나였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카우보이는 현상금 사냥꾼들을 이야기한다. 어차피 카우보이들이 서부 개척시대에 현상금 사냥도 했으니 크게 이상할 건 없다. 미국에서의 카우보이들은 미국 서부 벌판을, 비밥에서의 카우보이들은 우주를 떠돌이 생활하니 공허함과 상실감이 키워드가 될 수 밖에 없다. 떠돌이 생활은 어찌 되었든 공허할 수 밖에 없으므로

공허함을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크게 인기 있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말이다. 사람이 공허하다는 건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본질적으로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사랑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과의 사랑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연인과의 사랑으로 조금 더 쉽게 풀어낸다. 줄리아와 스파이크는 사랑하여 스파이크는 결국 흐린 눈의 공허한 카우보이가 되었고, 줄리아의 전 애인이었던 비셔스는 흑화하여 공허하고 냉혈한 음침 대마왕이 되었다. 줄리아는 결국 도망치다 스파이크를 만났고, 스파이크와 도망치다 죽었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되게 멍청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은 원래 기이하고 아름다운 거니까,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망한 사랑 이야기다. 그렇기에 스파이크는 죽으러 가는게 아니라 살아있으러 간다고 말하며 비셔스와 최후의 결전을 하러 갔던 것이고, 그렇기에 비셔스는 너와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지극히 해피엔딩이다. 찜찜하게 무언가 남겨 놓거나 생각할 음침한 구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비슷한 망한 사랑 이야기인 에반게리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점이다. 스파이크가 죽는데 어떻게 해피엔딩이에요? 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스파이크는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말이다. 스파이크는 상실감을 극복했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 방법을 죽음이라는 깔끔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찜찜하거나 음침하지 않다. 물론 죽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이 가장 이야기상 말이 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 있다면 이 이야기는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다. 이 이야기는 페이 발렌타인이 있기에 완성 되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해피 엔딩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건 단순히 스파이크가 자신의 역사를 잘 끝내서가 아니라고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인 이유는 페이 발렌타인의 존재 때문이다.

페이 발렌타인은 조심스럽게 시청자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다. 카우보이 비밥이 나온 1998년 ~ 1999년, 페이 발렌타인의 생년은 1994년, 카우보이 비밥의 세계선이 2071년임을 고려했을 때 시청자와 시대적으로 비슷하다. 게다가 페이 발렌타인의 어린 시절이 찍혀 있는 베타 맥스 비디오는 흔히 쓰는 비디오 규격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비디오는 VHS 규격으로 2000 년대까지 쓰였다. 베타 맥스 같은 경우는 1980년대 중반쯤에서 소니만 생산했고, 이 역시도 2000 년대까지만 생산했다. 시대적으로 발렌타인의 생년은 1994년이고 10대쯤 VHS 로 녹화가 되었으니 거의 VHS 끝물에 녹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발렌타인의 생년은 1980년대 언저리라고 보는게 조금 더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1998년 카우보이 비밥을 보는 주 연령층쯤 나이대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건 시청자가 페이 발렌타인에 몰입하기 좋은 숫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페이 발렌타인은 우주 왕복선 사고로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2070년대에 해동 되었다. 그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 이건 시청자의 현생을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에 몰입하는 동안 현생은 신경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을 되찾은 발렌타인은 스파이크가 비셔스와 싸우지 않고 비밥호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거기서 스파이크가 나는 죽으러 가는게 아니야 살아있음을 확인하러 가는 거야 라는 말은 페이 발렌타인에게 무척이나 잔인하게 들린다. 발렌타인 입장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서 깨어났더니 기억을 잃었고, 기억을 되찾고 나니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자기가 의지했던 사람은 죽는 길을 간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 내일 출근해야함을 깨달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발렌타인은 어쩌면 과거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으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일상을 사는 것이 필연인 것처럼, 발렌타인도 과거를 알게 되는 것은 필연일 수 밖에 없다. 페이 발렌타인은 그 공허함 속에서도 살아갈 것이다. 발렌타인은 과거를 알게 됨으로서 더이상의 매듭이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 있고, 살아 갈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 된다. 스파이크는 나쁜 꿈에서 깼기에 죽었고(애니메이션 캐릭터이기에), 페이 발렌타인은 꿈에서 깼기에 살았다.(시청자를 겨냥한 캐릭터이기에), 페이 발렌타인이 과거를 몰랐다면, 계속 방황하다 어느 도박장에서 이용당해 죽었거나, 아니면 굉장히 찜찜하게 끝났을 것이다. 그래서 발렌타인은 어떻게 되는건데! 상태가 되겠지. 하지만 그런 부분 없이 명쾌하게 이야기가 끝났다. 더 이야기적으로 설명할 부분도 없고, 공허함을 가지고 계속 살게 될 발렌타인과 시청자들에게 응원과 인간찬가를 보낸다. 그러니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공허함을 긁어주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이야기가 길었다. 처음엔 다들 보기에 봐야지 했다가 코로나로 회사를 일주일 쉬고 나서야 봤다. 처음엔 이것이 카우보이?! 였다가 마지막엔 이것이 카우보이..? 아 맞다 적극 추천해준 친구가 망한 사랑 이야기 전문가였지 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종국엔 이렇게 이상한 글까지 쓰게 되었다. 일부러 제트와 에드워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제트는 비밥호가 존재하는 한 실존할 것이고 에드워드는 결국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비밥호를 떠났으니까 말이다. 별로 걱정하거나 이야기적으로 필요한 무언가는 아니다.

감독 인터뷰와 함께 카우보이 비밥에 대한 해석이 있다고 하는데 딱히 찾아보진 않았다. 그런거 찾아보는 건 무척이나 재밌는 일이지만 요즘 하는 일은 내 생각을 글로 “표현” 하는 일이기에 딱히 지금 이 느낌이 덮어 씌여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비평가가 되거나 그런 류의 글들을 쓸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아직 공허함을 위로 받기에 카우보이 비밥보다 적절한 작품은 찾지 못하였다. 일단 재즈 풍 OST들부터가 나를 위로해주니까 그렇기에 길고 조금 떨리지만 당당하게 주장하는 후기를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