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이야기들은 변형되고, 재미에 맞게 각색되기 마련이다. 나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이야기들을 각색할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종종 기억 속에 저장되었던 이야기들도 바뀌기 마련인데 오늘은 내가 기억하는 제일 정확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다.

- 최초의 음주

최초의 음주는 2017년 11월 회사에 취업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가면서로 기억하고 있다. 회사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숙사에 있는 선임들이 족발과 소주, 맥주를 사주면서 술 예절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 기억 나기로 머리가 엄청 어지러웠고, 술에 취해서도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서 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들고 나와 “나는 존나 취했다”를 적었으며, 다음날 출근해서 엄청 힘들어 했었던 기억이 난다.

- 최초의 위스키

최초의 위스키는 아마도 2018년 6월 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담배를 피기 시작헀던 게 그 때쯤이니 그 때는 트위터를 한창 하던 때 였다. 그때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던 나보다 나이 많던 친구와 신촌의 바틸트를 갔던 것이 나에게는 최초의 바였다, 이미 나는 소주를 먹었을 때 소주 두 잔만에 취하는 걸 보고 술에 엄청 약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처음에 먹었던 칵테일은 그리 강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깔루야 밀크 같은 것들을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애인과 같이 바틸트에 갔을 때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리 강하지 않은 칵테일을 마셨고, 그는 아드벡 우가달을 마셨다. 갈 때마다 우가달을 시켜서 마시니 궁금해서 한 입 달라고 했었는데 그때 목은 타들어갈 듯이 아팠지만, 정말 강렬한 향에 매료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나의 최초의 위스키이자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 하는 소주 보다 먼저 마신 술이 우가달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에 시초가 되었다.

- 일이 고달프니 술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것을

그 뒤로 점점 더 아드벡 우가달에 빠지게 되고, 첫 잔으로는 당연히 아드벡 우가달을 시켜먹을 정도로 최애 술이 되었다. 동시에 미친 듯이 유흥을 즐겼던 시기로 기억한다. 술 마시고, 연애하고, 잠자리도 좀 가지고 그랬던 시기, 그게 아마 2018년 7월부터 2019년 말까지로 기억한다. 그때는 정말 주 100시간 씩 일했고, 쉬는 날이면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와 바틸트에서 술을 마셨으며, 그 사이 나에게 우가달을 추천해준 친구는 알콜성 급성 뇌졸중으로 장례식을 치루었고(2019년 3월), 정말 술과 연애가 없이는 한 주도 나기 힘들 정도로 미친 듯이 지치고 힘들었었다. 일단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많은 위스키들을 마셨다. 라프로익 쿼터캐스크, 탈리스커 18년, 그리스진, 메탁사, 아드벡 1975, 둠페리뇽 2008, 일본의 춘하추동 진, 우니와 아드벡 우가달, 멕켈란 18, 카나비스 진, 아 그리고 아마 내가 봄베이 사파이어와 사이다를 다 쳐먹고 헤롱 거리며 일산에서 서울 동부까지 택시 타고 온 것도 이때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만 나면 파티를 했고, 다양한 술들을 즐겼고, 각각의 술들에 대한 맛이나 에피소드들은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에 잊지 못할 기억들이니 언제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마저도 정리해야한다고 느낀다면 그때 정리 해보도록 하겠다. 나에게는 전성기 아닌 전성기였다. 정말 젊고 잘 모르니까 미친듯이 사고 칠 수 있었던 시간들, 동시에 엄마카드를 사용해서 돈 걱정 없이 다닐 수 없었던 것도 이것에 일조했었다. 그렇게 2019년까지 보냈다. 내가 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진 특유의 향이 나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마셨던 진들은 항상 그렇게 강하지 않은 술들 이었다. 고든스 같은 런던 드라이 진 보다는 그레이스 진, 카나비스 진, 춘하추동 진(아마도 여름을 제일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일런트 풀 같은 진들 말이다. 동시에 이런 농담도 꽤나 자주 했던 거 같다. 게이는 빻았고, 레즈는 구리고 트젠은 이상하다는 이야기나 트젠 프로그래머는 제곱만큼 이상하다는 이야기나 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화려하고,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꼰대며, 둘다 좋아하는 사람은 진짜 술에 미친 사람이라는 이야기, 잘 모르고 막 지를 수 있기에 했던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 농담들을 듣고 불쾌하지 않았던 많은 인연들에게 감사한다.

-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국합니다.

유독 2019년 이전에 있는 크리스마스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2019년에는 아마 친구가 파티를 열어주어 파티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2019년 크리스마스 쯤 해서 연차를 내고 쉬려니, 2020년 1월에 베트남으로 출장을 간다는 이야기를 부장이 했기 때문이다. 원래 베트남 가는 장비를 했던 주임은 산업기능요원 훈련소를 갔고, 동기는 허리 수술로 병가를 썼기 때문에 내가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2019년 크리스마스 파티 끝나고 마신 홍차를 기점으로 차를 마시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2020년 1월 코로나가 터지기 딱 직전에 나는 베트남으로 출국하게 된다. 면세점에서 아드벡 우가달 한 병과 그때 피웠던 담베인 메비우스 LSS ONE 두 보루를 사고는 출국했다. 가서도 정말 미친 듯이 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코로나로 락다운 걸려서 다같이 한인 마트에서 식재료 사다가 요리해먹고,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15시에 퇴근해서 19시에 출근해서 야간 근무 교대를 한 달을 하고, 또 주간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문제가 생겨 15시에 퇴근하고 19시에 출근해서 야간 근무 한 달을 했다. 그떄 월급이 세후 170이었는데 해외 출장 수당으로 120을 더 받았다. 베트남 물가를 생각해보면 꽤나 많이 받았던 쪽에 속한다. 다들 돈은 좀 있고, 일은 힘드니 맨날 저녁으로 국밥에 소주를 반주 삼아 마셨고(사실상 매일 회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식사가 끝나고 난 뒤에는 노래방에 갔다. 유흥 노래방 말이다. 나는 말할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성 권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런 것들을 분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그렇게 입에 대지 않았던 소주와 맥주를 정말 많이 마셨다. 타이거맥주가 먹다가 지쳐 나중에는 하이네켄을 마셨고, 소주도 하루에 한병정도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얼굴부터 몸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고, 그렇게 6월까지 보냈다. 원래 비자는 3개월짜리였는데 코로나로 모두 셧다운 되는 바람에 연장하여 6월까지 있게 되었다. 술과 일에 지쳐 비즈니스 석에서 정말 편하게 잤던 걸로 기억한다. 자가격리 2주동안 내내 잠만 잤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7월이 되었다.

- 사랑은 참으로 어려우므로

베트남에서 귀국하면서 베트남 법인 직원에게 베트남 전통 찹쌀 주인 넵머이를 부탁해서 2L 정도 가져왔었는데, 그 쯤 있었던 파티에서 조금 나누어주고, 친하게 지냈던 바틸트 바텐더에게 주었다. 내 친구와 같이 나누어 먹으라는 의미에서였다. 그 술은 정말 내가 기억하기로도 신기했는데, 분명 발효주였다. 발효주 특유의 탁함과 쌀들이 떠다녔었고, 하지만 달았고, 마치 잘 만들어진 위스키 같았다. 도수도 꽤나 있었고, 맛도 복잡했다. 가정 별로 다르게 만들기에 가정 별로 레시피가 달랐던 넵머이였는데, 그 법인 직원의 넵머이는 정말 신기했다. 아직도 종종 그리울 정도로

2019년 말이었던가 TDOR 트랜스 추모의 날 행사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트랜스 해방전선과 조각보에서 하는 행사 두개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나는 그때 조각보 행사를 갔다. 트랜스 해방전선 행사는 좀 더 미니 퀴퍼 같았고, 조각보 행사는 좀 더 추모에 컨셉을 맞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 연이 닿았던 언니와 귀국 후에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 언니와도 꽤 많은 술을 마셨었다. 꽤 많은 정을 나누었었고, 여러 이유로 술로 외로움을 달렸던 언니라 내가 같이 바틸트에 가서 아드벡이니 라프로익이니 하는 술들을 꽤나 많이 사주었었다. 동시에 그가 자주 갔던 합정의 아초바도 자주 갔었다. 아초 사장님은 정말 꽤나 유쾌하신 분인데, 저녁쯤 플레어 쇼를 했던 것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플레어 쇼를 하며 만든 칵테일들을 그날그날 손님들 몇 분을 뽑아 주셨는데 그것도 꽤나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일들과 이유로 2020년 12월 29일 그의 장례식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은 한 해를 술과 보냈었다. 애도와 분노와 슬픔을 담은 많은 술들을, 동시에 상담를 시작함으로서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들도 정리하기 시작했고, 술도 엄청 줄이기 시작했다, 더이상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 크리스마스는 첫사랑과 보냈고(술과 함께), 2021년 크리스마스는 나의 친구들과 보냈다. 꽤나 다정하고 건전하게 케익과 커피를 나누어 먹고, 드라이브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2021년 12월 31일까지 근무를 하고 나는 퇴사를 하게 된다.

- 새해 새출발

새해에는 소원이 있었다. 술을 줄이는 것, 엄청 줄이는 것, 술 때문에 고생했던 일들도 너무 많았고, 술이 더이상 몸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예 지금 들어간 회사에서는 술을 못 마신다고 이야기 했다. 회식 때나 그럴 때 실수하거나 아니면 그런 것때문에 몸이 더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술을 달에 한 번, 두 잔 정도 마신다. 2022년 내내 실험해본 결과 아예 안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솔직히 담배는 못 끊어도 술은 끊겠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욕망은 억누르려고 할 수록 반동으로 더 큰 게 충동적으로 된다. 그래서 적절히 한 잔 두 잔 정도로 풀어주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연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줄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워서 만났는데 지금은 산책이나 이런 걸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길게 글을 적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2년만에 만나는 친구와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한 세 잔만 마셔야지 했다가 그 친구가 내 술까지 같이 시키는 바람에 엄청 마시게 되었고, 마시고 나서 다음날과 다다음날 속이 상한 걸 보고 정말 속이 많이 상했구나 라고 느꼈다. 그 친구가 완전 플러팅 장인인데 내가 술 사주는 거 내 생일 주라고 생각하고 마신다고,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니 귓속말로 자기 생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정말ㅋㅋㅋㅋ 부치다 정말롴ㅋㅋㅋㅋ

아무튼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동안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받아준 많은 친구들과 임시 엄마라고 해야할까 나에게 조언해주고 나를 지지해준 많은 언니들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나 혼자서 해낸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고, 많이 마셨던 아드벡 우가달은 이제 부담스러운 술이 되어 버렸다. 내가 사준 우가달을 마셨던 친구들과 애인들은 모두 안 좋게 끝이 났고, 동시에 그 특유의 향이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시작을 끝판왕으로 해버린 사람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맞이한 말로였다. 누군가는 이 글들에 걸고 싶은 딴지가 많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이것들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술은, 그 중에 아드벡 우가달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추억들을 한번에 농축 시킨 라일라 위스키이다. 언젠가 또 우가달을 마실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워낙 바에 잘 없는 술이지만, 다행히 있는 바들을 조금 알고 있으니까, 언젠가 또 마시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즐겁고 추억처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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